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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무료 폰트'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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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2 작성일21-07-02 17:47 조회1,4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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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폰트의 함정

 

재단법인 동천 황인형 변호사

 

 

지난 몇 달간 전국의 여러 사회복지관에 순차로 내용증명 우편이 도착했다. 우편물의 내용은 대개 귀 기관에서 홍보용으로 사용한 이미지를 보니, 우리 회사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폰트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지만 귀 기관은 저작권의 사용자로 등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귀 기관에 사용권이 있음을 며칠 내에 해명하지 않으면,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 수 있다라는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폰트 업체는 자신들의 특정 폰트를 사용한 이미지를 찾아서 게시자의 사용권 취득여부만 확인하고 곧바로 이러한 서신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한동안 폰트 업체들은 폰트 프로그램을 누구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게시해놓고, ‘무료 폰트임을 강조했다. 그런 무료 폰트들은 업체가 일방적으로 정한 이용 계약에 동의하여야만 설치 가능하거나, 다운로드와 동시에 이용 계약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되어 있다. 그 이용 계약은 대개 개인적, 비상업적 이용만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포함하지만 애당초 무료 폰트라며 자유롭게 받을 수 있게 되어 있다 보니, 사람들은 폰트를 설치하면서 그런 계약에 동의하게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업체에서 무료 배포한 폰트는 사실상 추후의 합의금 장사를 위한 함정에 가까운 경우가 많아 주의를 요한다. 통상 업체 측은 만약 폰트 프로그램 이용료의 두 배를 지급하면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한다. 이렇게 합의금을 요구하는 업체들은 폰트의 이용권을 무조건 번들로 구매해야 한다면서 번들 가격의 두 배, 따라서 실제 이용된 개별 폰트의 값이라 생각되는 금액보다 수십 배는 부풀려진 금액을 요구하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 기관에서 폰트를 무단 사용하였다는 부분은 대개 포스터의 제목이나 부제와 같이 몇 개의 단어나 한 두 줄을 넘지 않는 짤막한 문구에 일회적으로 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내용도 사회복지관의 공익적, 비영리적인 사업을 주민들에게 알리려는 것일 뿐 복지관이 이를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이 전혀 없다. 이에 일부 폰트 업체들의 과도한 합의금 요구는 더욱 부당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사회복지관은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의 위협을 매우 큰 부담으로 느끼고 합의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 업체의 입장에서는 무단 사용 사실을 입증할 근거가 불충분한 경우라도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 합의금을 받거나, 실패하더라도 복지관의 답신을 통해 실제 소송을 위한 유리한 입증자료를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관은 이러한 행태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홍보물이나 자료에 저작권 침해의 소지가 없는 폰트를 사용하는 것이다. 가급적 문서나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에서 제공되는 기본 폰트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많은 기관이 이용하는 한글과컴퓨터 프로그램에 설치된 기본 서체 중에도 함초롬체나 문체부에서 제공한 서체가 아닌 폰트 업체에서 제공한 서체는 문서의 PDF 변환에 관하여 별도의 이용계약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가 있고, 최근에는 해당 이용허락 범위의 위반을 이유로 내용증명을 보내오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한컴 프로그램 내장 폰트의 출처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니, 일독을 권한다.

(https://www.hancom.com/board/noticeView.do?board_seq=3&artcl_seq=6117&pageInfo.page=&search_text)

 

프로그램에서 제공되는 것 이외에 추가적인 디자인 요소가 필요하면 단순히 무료 폰트를 다운받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고, 폰트 이용허락의 범위를 반드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업무적(상업적) 이용 및 변경이외에도, PDF 파일 등 전자 인쇄물, 포스터팜플렛 등 종이 인쇄물 제작배포가 모두 가능한지, 인쇄물 제작이 허용되는 경우에도 제목이나 헤드라인 등에 사용이 가능한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가끔 카페, 블로그 등에 공유된 무료 폰트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해당 폰트의 원 출처를 확인하기 어렵고 따라서 저작권자가 누구인지, 이용 허락 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으므로 이러한 방법은 피하는 것이 좋다. 컴퓨터에 전임자가 설치해 둔 폰트가 있더라도, 마찬가지로 출처와 이용 허락 범위를 알기 어려우므로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 복지관 외부의 제3, 예를 들어 디자인 업체나 지역 주민 등이 만들어서 복지관에 제공한 홍보물의 경우, 복지관은 게시하기 이전에 제3자에게 폰트를 이용 허락 범위 내에서 사용하였는지 확인하도록 요구하고 그 근거를 남겨두는 것이 안전하다. 심지어는 미리캔버스 등의 유료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드물게 개별 디자인 요소가 별도의 이용 허락 범위를 설정하고 있는 경우가 있으므로, 최소한 확인은 거치는 것이 좋다.

 

이미 업체의 내용증명을 받게 된 상황이라면 합의금을 지급하거나 답변하기 전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최근 수사기관은 폰트 업체가 먼저 무료 폰트를 배포하였고, 기관의 폰트 이용에 상업적 목적이 없었던 사안에 불기소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수사기관은 그 근거로 저작물의 이용을 허락받은 자는 허락받은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그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저작물의 이용을 허락받은 자가 이용 방법 및 조건을 위반하였다고 하더라도 저작재산권자의 복제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20151017)”는 대법원의 판례를 들기도 한다. 이미 무료 배포되어 자유로운 복제가 허락된 폰트 프로그램을 이용한 경우에는 이미 해당 폰트 업체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이에 관해 저작권법위반죄가 성립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여러 쟁송을 통해 판례와 수사기관 처분의 경향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업체들은 합의금을 지급받지 못하면 곧바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추세이다. 최근 재단법인 동천과 법무법인 태평양의 변호사들이 공익활동의 일환으로 한 복지관을 대리하여 수행한 사건이 바로 이런 사례다. 이 사건에서 폰트 업체는 복지관이 비영리사업 홍보용 포스터에 사용한 서체가 무단 사용된 것이라 주장하며 손해배상금 3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청구하였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업체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고, 이에 업체는 바로 항소하여 2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 사건이 좋은 선례가 될 수는 있지만, 아직 관련된 대표 판례나 판결의 사례가 충분히 축적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폰트 저작권 소송에서 비영리단체나 복지관 측에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영리적 목적에서, 해당 폰트의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부 또는 일시적으로 폰트를 이용한 사실이 있을 뿐이고 그 폰트를 이용하게 된 이유가 애당초 무료 폰트로 배포, 유통되었기 때문이라면, 가급적 그 이용에 관하여는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형평의 관념에 부합하고, 일부 폰트 업체의 과도한 합의금 요구 관행을 종식시키는 길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 사회복지관 관계자들 또한 저작권 이용 허락의 범위를 항상 확인하고 준수하는 습관을 들이고, 매번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하였다는 근거를 마련해 두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