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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장애인 시외이동권 관련 대법원 판결_김윤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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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23-04-03 15:26 조회4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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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평석] 장애인 시외이동권 관련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2. 2. 17. 선고 2019217421)

재단법인 동천 김윤진  변호사

(이 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116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I. 서론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 
사람으로 붐비는 고속터미널. 모두가 어디론가 바삐 떠나는 것 같지만, 버스들이 떠나는 광경만을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저상버스나 휠체어 탑승설비(리프트・경사판)가 마련된 시외 이동 버스는 전국에서 총 10대, 노선은 4개뿐이다. 장애인콜택시(장콜)과 같은 특별교통수단도 주로 지역 내 운행으로 제한되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지역 간 이동은 KTX 노선이 닿는 도시 외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외 이동 버스가 단 한 대도 없었던 2014년,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소송이 최초로 제기되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이 2022. 2. 17.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소가 제기된 지 8년 만에 대법원의 판단이 이루어졌다. 대상판결은 버스회사에 대하여 휠체어 탑승설비를 설치하는 적극적 조치를 명한 원심의 원고승소 부분을 파기함으로써, 8년의 기다림의 결과로서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대상판결의 의미와 한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

IV. 대상판결의 검토
1. 장애인의 이동권 부정
(…)시외버스는 거주지와 직장 소재지를 오가는 통근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나, 다양한 지역으로의 출장 수단이나 여행 수단으로도 빈번하게 이용된다. 그러나 대상판결에 따르면 장애인은 자신과 가족의 거주지와 직장 소재지만을 오가는 존재, 그 밖의 지역에는 갈 ‘개연성’이 없는 존재이다. 법원이 피고 버스회사들의 차별시정을 위한 재정적 부담을 고려하고자 한다면 차별시정 대상을 모든 버스로 하되 이행기를 장기적,단계적으로 정함으로써 이익형량을 반영할 수 있음에도, 차별시정 대상 자체를 한정한 것은 장애인이 모든 노선을 탈 필요는 없지 않냐는 비장애인 중심의 일방적・편의적 관점을 반영하고 있어 매우 차별적이다.(…)

2.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부정
(…)차별행위의 존재가 인정됨에도 법원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보류한다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오히려 사적 주체보다도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대우할 의무를 더욱 엄격히 이행해야 할 공공기관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우지 않는 법, 그저 선언에만 그치는 법이 될 것이다. 

V. 결론
이번 설에도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외침은 계속되었다. 대상판결 선고 이후 열린 토론회에서 정부기관 관계자는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 요구와 관련하여 "고속버스 타지 말고 KTX와 장애인콜택시(장콜)를 타라", "장애인이 저상버스 타는 경우를 많이 못 봤다."는 등의 발언을 하였다. 비장애인 대중 일부가 지닌 생각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KTX역이 닿지 않는 지역은 수없이 많고, 장콜은 긴급한 필요가 생겼을 때 적시에 이용하기 어렵고 도시 간 이동이 어렵다. 특별교통수단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기적・상시적으로 운행되어 예약 없이도 언제든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는 일반교통수단에 대한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장애인의 동등한 생활을 위한 시설이나 서비스 제공을 요구할 때 ‘그렇게 수요가 있지 않다’, ‘얼마나 이용하겠느냐’ 같은 반응과 마주하곤 한다. 장애인이 활동하기 힘든 환경으로 인해 집 밖 일상에서 비장애인이 마주치는 장애인이 적고, 그에 따라 장애인의 수요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로 인해 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장애인의 활동은 위축되어 계속 보이지 않는 악순환이 지속된다. 교통수단의 경우에도, 일반교통수단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으니 장애인은 주로 특별교통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비장애인의 눈에 장애인의 일반교통수단 필요성은 적다고 판단되어 일반교통수단은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이동할 권리는 단순히 물리적 자유만을 뜻하지 않는다. 이동할 권리는 사회적으로 연결될 권리와도 직결된다. 장애인이 이동할 권리를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차별이다. 차별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사적 주체에게는 부담을 과도하게 지우면 안되니 차별을 시정할 의무가 제한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게는 법이 그 의무해태를 명확히 차별행위라 규정하고 있지 않으니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결국 누구도 책임을 온전히 지지 않는다는 결론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그로 인한 장애인의 피해를 용인하는 것으로서 대상판결이 강조한 비례원칙의 핵심인 ‘공익과 사익의 조화’와는 거리가 멀다. 대상판결의 판시대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정신에 부합하는, 장애인의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기여하는 판결이 늘어나기를 바라본다. 

(전문 링크: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 116호 발간 (2023. 2. 20.) http://minbyun.or.kr/?p=54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