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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두를 위한 건강보험제도_권영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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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23-01-02 16:06 조회4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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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건강보험 제도

재단법인 동천 권영실  변호사

(이 글은 2022. 12. 22. 법률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오늘도 패소 소식이다. 연말이라 그런지 지난주부터 여러 사건의 선고가 있었는데 줄줄이 결과가 좋지 못했다. 대부분 일년 넘게 공방을 오가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다퉜던 터라 마음이 쓰리다. 아무리 사건 담당 변호사로서 허망하다 한들, 선고 결과에 따라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당사자만 하랴. 난민과 이주민을 위한 공익사건을 주로 담당하다 보니, 이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법원의 판단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한국사회 물정을 잘 모른 채 그저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보이스피싱 전달책에 가담하여 징역형을 받은 난민도, 여권을 빼앗긴 채 거의 감금상태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다가 체류기간을 연장하지 못하고 출국명령을 받은 난민신청자도 법원의 구제를 받지 못하였다.

 

 Y씨에 대한 건강보험 부당이득금환수처분 사건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대유행 초반,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주민에 대해 한국 정부는 출국기한의 유예 조치를 시행하였는데, 이때 Y씨도 출국유예를 받았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Y씨는 1년 넘게 출국유예를 연장하며 한국에서 지냈다. Y씨는 출국유예 기간 동안 자신이 건강보험 가입자격을 상실한 줄도 모른 채 건강보험공단에서 매달 부과하는 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하며 의료기관을 이용하였다. 그런 그에게 건강보험공단은 1년 후 당시 받은 보험급여는 부당이득이므로 반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Y씨는 자신의 귀책사유 없이 한국에서 출국유예를 받으며 부득이하게 장기간 지내게 되었고, 그 기간 동안 건강보험공단이나 출입국·외국인청, 병원 그 어느 기관으로부터도 출국유예를 받는 경우 건강보험 가입자격이 없다는 내용을 안내 받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게다가 공장이나 식당에서 보조일을 하며 살아온 그에게 갑자기 날라온 환수처분 금액은 너무도 커서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억울한 사정은 Y씨만의 문제가 아니었고, 당시 출국유예를 받았던 다수의 이주민들에게 동일하게 발생했다.

 

 재단법인 동천은 공익사건으로 Y씨를 대리하여 부당이득환수처분 취소소송을 진행하면서, 당시 입법적 미비로 인해 Y씨가 출국유예를 받았지만 그 실질은 체류기간의 연장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 국민건강보험법은 국내체류가 법률에 위반된 경우 가입자격이 없다고 규정하는데 출국유예를 받은 경우 체류가 위법하지 않다는 주장, 사회보장 행정영역에 있어 수익적 행정행위를 취소하는 것은 수익자의 생존 내지 인간다운 생활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가급적 수익자의 신뢰를 중시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Y씨가 스스로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하였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공단에 알렸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았으므로 귀책사유가 있다고 하면서 Y씨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한국에서 고된 일을 하며 뜻하지 않은 질병을 얻게 된 Y씨에게 그 누구도 건강보험에 대해 얘기해주지 않은 상황에서 출국유예 기간 동안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출국유예를 허가한 출입국이나 보험료 납입고지를 한 건강보험공단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어야 하는데, 전적인 책임을 오로지 이주민이 떠안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 행정서비스의 미숙함이나 불공평함의 한 단면으로밖에 볼 수 없다. 이주민의 언어적 제약, 정보의 부족 등 제한적인 환경을 이해하고, 각자가 처한 구체적 상황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법원의 판단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