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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발달장애인도 투표하고 싶다_김윤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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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22-10-28 13:50 조회5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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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도 투표하고 싶다

재단법인 동천 김윤진  변호사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세요.”, “정책을 보고 투표하세요.”∙∙∙. 선거 때마다 들리는 구호다. 이에 따르면 선거 참여는 마음 먹기에 달린 문제 같다. 시간과 마음을 내어 공약을 살펴보고, 투표장에 가서 한 표를 행사하고 오기.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마음이 굴뚝 같아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글을 읽지 못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이 그렇다.

 

이들이 느끼는 장벽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선거공보, 하나는 투표용지다.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전문적인 용어로 이루어진 선거공보를 받은 발달장애인은 누군가의 설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스스로 공약을 평가하고 결정하기 어렵다. 일부 발달장애인은 숫자와 글자로만 이루어진 투표용지를 읽을 수 없어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자와 정당에 기표하지 못하기도 한다.

 

해외 각국에서는이해하기 쉬운 형태(easy-read version)’의 선거공보나 그림투표용지가 선거권자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이해하기 쉬운 형태란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 그림, 용지 등에 관한 기준을 따른 정보의 형태를 말한다. ‘최소 8cm의 여백을 둔다’, ‘그림을 넣는다’, ‘최소 활자의 크기는 14포인트 이상으로 한다’, ‘배경색은 한 가지 색으로 사용한다’, ‘개성이 가미된 서체보다는 세리프(글자의 돌출선)가 없는 정자체의 서체를 사용한다’, ‘MS word 작업 시 1.3 이상, 한글 작업 시 180% 이상의 줄 간격을 둔다’, ‘최대한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등이 그 예다. 영국의 경우 후보자와 정당들은 이해하기 쉬운(easy-to-read)’ 형태의 공약(manifesto)을 제작하여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장애인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언어로 작성된이해하기 쉬운(FALC: Easy To Read and Understanding)’ 형태의 선거공약(Les déclarations)을 제작하여야 한다(프랑스 대통령선거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이를 후보들이 직접 음성으로 읽는 영상이 올려져 있다). 스웨덴의 경우 문화부 산하 정부기관인 접근 가능한 미디어를 위한 기관’(Myndigheten för tillgängliga medier, ‘MTM’)과 각 정당에 의해 정당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Lättläst) 형태의 자료가 제공되고 있다(스웨덴의 모든 공공기관의 홈페이지에는 의무적으로이해하기 쉬운형태 페이지가 마련되어 있고, 스웨덴의 각 정당 홈페이지도 이해하기 쉬운 형태 메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림투표용지를 살펴보자. 그림투표용지란 문자 외의 사진, 로고를 포함한 투표용지를 말한다. 영국(스코틀랜드), 대만, 캄보디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후보자가 속한 정당의 로고나 후보자의 사진을 포함한 투표용지가 모든 선거권자에게 제공되고 있다. 이는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문해자를 위하여도 유용할 것이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에게도투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투표를 어떻게 하는지, 좋은 공약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구체적 공약 내용 자체를 쉽게 설명한 선거공보, 그리고 투표 현장에서 직접 원하는 기표란에 투표할 수 있는 투표용지가 필요하다.

 

2007년 제정된「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국가∙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설 및 설비, 참정권 행사에 관한 홍보 및 정보 전달, 장애의 유형 및 정도에 적합한 기표방법 등 선거용 보조기구의 개발 및 보급, 보조원의 배치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하며(27조 제2), 공직선거후보자∙정당은 장애인에게 후보자 및 정당에 관한 정보를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한 정도의 수준으로 전달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27조 제3). 또한 2008년 비준되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니는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하장애인권리협약’)은 국가가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정치 및 공적 생활에 효과적이고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 특히투표절차, 시설 및 용구가 적절하고, 접근 가능하며, 그 이해와 사용이 용이하도록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선거권의 보장은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의 보장이다. 모두에게 동일한 선거공보 등과 투표용지가 제공되는 것이 일견 평등한 대우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이 누군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아니한 것이라면 이는 실질적 차별에 해당한다. 그 누군가가 아무리 소수에 속한다 하여도 이들을 배제한 국가는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발달장애인 당사자들과 대리인단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선거공보 제작 및 그림투표용지 제공 의무화 차별구제청구소송이 진행 중이다. 우리 사회가 누구나 자신이 보유한 선거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