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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ㆍ청소년 | 성폭력, 두려워해야하는가 BKL 여성청소년분과위원회 세미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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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4-04-11 00:00 조회2,0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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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1일 점심시간. 한국지식재산센터 11층의 태평양 회의실에는 태평양 여성공익인권위 변호사들과 동천의 변호사 및 인턴들이 모였다. 
성폭력전문연구소 ‘울림’의 초대소장인 권인숙 소장의 세미나를 듣기 위해서였다. 
‘성폭력 두려워 해야 하는가’ 라는 제목의 이번 세미나는 이론으로, 기사로만 접해오던 성폭력사건들에 대한 전문가의 
현장감있는 생생하고 적확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1. 성폭력보도 많이하면 좋은거 아닌가요?

실제로 여성청소년분과에서 언론모니터링을 하다보면, 성범죄, 성폭력과 관련한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실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범죄모습도 비슷하고 그에 따른 처벌결과도 비슷하다. 그런데 왜 이리도 성폭력보도는 많이 쏟아질까? 아니, 다시 생각해보면 왜 이리도 많이 보도를 해야하는 걸까? 모든 성범죄 성폭력 사건을 보도해야 하는게 아닌데 말이다.

권인숙소장은 성폭력 보도가 불필요하게 많다고 말한다. 성폭력 보도가 많아지면 피해자에 대한 도움이나 우호적인 시각이 많아질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성범죄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오히려 이로 인한 부작용이 크다. 특히나 김길태사건의 경우 그정도의 관심이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이 크게 남는다. 오히려 과도한 성범죄 보도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특징적이고 자극적인 범죄의 모습만 기억하게 한다.

울림에서 진행했던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대생이 성폭력에 대한 정보와 관심을 갖게 되는 경로가 언론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두려움에 대한 구성내용이 특징적인 것(ex. 삽입강간)으로 한정된다는 점이 문제인 것 같았다. 언론의 성폭력, 성범죄 보도가 결국 성범죄자를 괴물로 상정시켜 불안감을 가중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성범죄가 이런 괴물들에 의한 것 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다수 라고 한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성폭력보도, 아동유괴보도가 자제되는 방향으로 변화되는 추세라고 한다. 언론보도에 의해 두려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에게도, 또 일반 대중에게도 좋지 않다는 이유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공감이 많이 되지 않은 상태인 듯 싶다.


#2. FRAME.

이러한 강간주체나 행위에 대하여 우리들은 특정한 유형의 사고프레임을 만들게 된다. 성범죄는 ‘어떠어떠한’ 상황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상황을 피해야 한다, ‘어떠어떠한’ 사람이 가해자일 것이다. 이 ‘어떠어떠한’은 대체 무얼까? 우리는 이를 특정 지을 수 있을까?

특히 권인숙소장은 아동성범죄에 관하여 남아와 여아의 보호 프레임 자체도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어른이 여아에 대해 행하는 아동성범죄들이 일반적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에 부모들의 교육과 상황에 대한 회피가 우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바와 같이 성범죄자들은 괴물같은 사람 뿐 아니라 우리 주위의 사람들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또한 예방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프레임으로 자리잡아 ‘피해야한다’는 논리는 너무 극단적이다. 오히려 상황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구조요청이나 성범죄상황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남아의 경우는 또 다른 프레임이 작동한다. 첫째로, 남아는 성폭력의 피해대상으로 쉽게 생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체로 학교폭력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를 당한 남자아이의 경우 더 말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말하지 못한 채 남게 된 남아들의 성폭력 피해사실은 치명적인 상처로 남게 된다. 둘째로는 부모들의 사고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없다. 이는 대단히 불균형적인 성범죄예방 교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권인숙 소장은 “오빠 있는 집에 딸을 놀러 보내는 것은 싫어하면서 내 아들에 대한 의심은 갖지 않는다.” 라고 말하며 성차별적인 우리들의 프레임을 지적한다.

위와 같은 부정적인 방향에 방점을 두고 있는 프레임은 결국 언론에 의해 다시 악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악순환으로 인해 특정된 가해자, 특정된 상황 등이 다시 상정되고, 그렇기에 우리는 감정적인 대처 밖에 할 수 없다.


#3. 대체로 일어나는 것은 자기방어교육.

조금 더 자세히 보자. 성범죄, 성폭력에 대해 어떠한 ‘지침’을 우리는 받고 있을까? 우선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옷차림, 말투에 대한 조심이다. 앞서 말한 ‘상황’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를 꼭꼭 감싼다. 다른 이를 자극하지 않도록 얌전한 옷을 입어야 하며, 자기보다 위력적인 사람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도록 얌전한 말을 해야 한다. 튀지 말아야 한다. 특히나 성장기 청소년 여자아이들, 그리고 갓 성인이 된 여성들에게 부모들의 몸관리 집착은 심화된다. 중고생들의 짧은치마나 화장은 잠재적 성범죄자들을 자극하기 때문에 불허되고, 여대생들의 술자리는 가정 내 아버지들이 용돈지급을 끊을 정당한 사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들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이런 합리적이지 못한 대응의 핵심은 <성폭력에 대한 사회통념을 여성의 몸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범죄의 사유가 마치 피해자에게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를 만들지 않으면 나는 당하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에 대한 불안과 염려를 내면화 시켜서 공포감만 조성할 뿐이다.


#4.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범죄에 대한 교육과 지식공유는 결국 통념과 고정관념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곡된 성범죄자의 모습들과 피해자 모습, 성범죄를 유발한다고 생각되는 잘못된 통념들을 지워나가야 한다. 이것이 성범죄에 대한 장기적인 관점의 전제가 될 것이다.

“위험하지 않은 세상이 어디있나.” 권인숙 소장은 말한다. 사실 어느 곳도 범죄의 현장이 될 수 있고 누구라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경계하고 단절하고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진짜로 두려워 하고 있는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잘못된 공포감과 내면화된 불안감은 결국 삶의 전반이자 가장 기초적인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게 한다. 맞지 않는 감정적인 대응에서 오는 대답이기 때문이다.

권인숙 소장은 “두려움을 가지려면 최소한 개인 주변에 대한 경각심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현재와 같이 공포에 떠는 것이 과연 적당한가. 그렇지 않다. 부풀려진 공포감에서 오는 불안감만 있을뿐. 이러한 최소한의 경각심을 유지한 채, 우리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한다면 우리가 비뚤게 보고 있던 성범죄와 관련한 시각이 바뀌게 되고, 더 합리적인 대응과 예방이 가능하지 않을까. 

- 인턴 전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