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동천이 선정한 장학생 난민 자녀들의 가정 방문기 > 공익법률지원활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활동

공익법률지원활동

동천은 법무법인(유한) 태평양과 협력하여 난민, 이주외국인, 사회적경제, 장애인, 북한/탈북민, 여성/청소년, 복지 등 7개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가 인권침해 및 차별을 받는 경우와 공익인권 단체의 운영에 있어 법률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공익소송 및 자문을 포함한 법률지원, 정책·법 제도 개선 및 연구, 입법지원 활동 등 체계적인 공익법률지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난민 | [난민]동천이 선정한 장학생 난민 자녀들의 가정 방문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4-03-24 00:00 조회2,236회

본문


“지금도 우리 나라는 전쟁 중이에요.”
“지금도 우리 로힝야들은 잔인하게 죽고 있어요. 여기 사진도 있습니다.”
“지금도 파키스탄의 탈레반은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어요. 정부의 보안은 탈레반의 위협보다 견고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난민’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이웃들이 한국에 온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본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온 난민들, 
이들이 여러분의 바로 옆집에 살거나, 이들의 자녀가 여러분의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동천에서는 난민, 결혼이주민, 탈북자, 장애인 가족 자녀들을 대상으로 2011년부터 매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2011년에는 21명, 2012년에는 24명의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그 수가 더 늘어 총 35명의 학생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35명의 학생들 중 12명이 난민 가정의 자녀들입니다. 

올해부터는 장학금 지급과 별개로 이들을 직접 찾아가 구체적인 어려움이 무엇인지 함께 듣고 돕기로 하였습니다. 
현재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특별히 법률로써 공익에 이바지 하는 동천이 더욱 나서서 도울 수 있는 법적 어려움은 없는지 
알고자 한 시간입니다. 그렇게 지난 2월 14일, 동천의 구대희 팀장님과 김연주 변호사님 
그리고 제가 난민 열 두 가정 중 세 가정에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아이들이 걱정이에요. 한국에 출생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학교에 소풍을 가는 것조차 어려워요.” 

콩고에서 온 두 아들의 어머니는 초등학생인 자녀가 걱정입니다. 
현재 난민 신청자인 부모님은 본국에서의 끊이지 않는 내전을 피해 10년간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아직도 난민 인정을 위해 소송단계에 있는 이들에게는 무국적자로 남는 아이들이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어려움입니다. 
ID가 없어 주민등록이 되어있지 않아 소풍을 가는 것도 어렵고 학교에 입학할 때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 겨우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었던 당시에는 같은 거주지 안에 있는 통장의 사인(서명)이 있어야 인근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데 
사인을 해주지 않아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운 좋게 MBC에서 이들의 사연을 다큐멘터리로 다루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본 현재 학교의 교장이 아들의 입학을 허가해주어 거주지와는 멀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는 해결이 되었지만 졸업 후 중학교 입학 문제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한창 천진난만해야 할 아들이 커다란 눈동자로 “왜 나는 ID(주민등록)가 없어? 소풍은 왜 가면 안돼?” 라고 물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옵니다. 
어머니의 커다란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벌써 고등학교 1학년이지만 한국의 학교 공부가 너무 어려워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학원에 보내는 것은 우리 형편으로는 어렵습니다.”

미얀마에서 온 로힝야 가족에게는 한국 특유의 학교 생활이 아직은 어렵습니다. 
로힝야는 미얀마의 아라칸 주에 사는 소수 민족으로 미얀마 정부는 이들의 시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로힝야 민족은 곧 신분증과 여권도 없이 토지 소유권도 인정 받지 못한 채 철저한 무국적자 신세로 떠돌아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매해 수만 명의 로힝야 민족이 미얀마 정부의 박해를 피해 바다를 건너고 일부는 바다를 건너다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자국에 남아있는 로힝야 민족은 고문과 살인, 강간 등의 피해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을 찾은 로힝야 아버지는 다행히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 인정을 받았고 지금은 귀화를 하여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공장 바로 옆의 컨테이너 방 한 칸에는 어린 두 딸과 부모님이, 
그리고 다른 컨테이너 방 한 칸에는 이미 고등학교를 훌쩍 넘긴 작은 아들과 큰 아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현재 가족 모두가 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귀화 절차를 무사히 밟을 수 있도록 문서들을 준비해놓았지만 
혹시나 빠진 것은 없는지 중요한 서류를 발급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꼼꼼히 물어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학교 공부가 걱정입니다. 

“한국에서는 공부를 잘해야 할 것 같은데 아들은 공부를 어려워합니다”라며 
여느 한국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에게는 아들의 진로가 큰 고민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큰 애도 유치원 갈 나이가 되었지만 경제적 형편 때문에 지금은 작은 애만 보내고 있어요.” 

안산의 작은 빌라, 이 곳에는 본국의 탈레반 무장 단체의 위협을 피해 온 파키스탄 어머니와 방글라데시인 아버지가 살고 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유치원 봄방학을 맞은 아이가 우리에게 수줍은 듯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바로 오늘이 졸업식이었다며 어머니는 아들의 유치원 생활을 담은 졸업 앨범을 직접 보여주었습니다. 
동천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은 모두 아들의 유치원 비용으로 잘 쓰고 있다며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해주었습니다. 
난민 신청을 해서 ‘인도적 체류 자격’을 얻은 이들 가정에게는 불안정한 취업 자격이 걱정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한국에 머무를 수 없는 인도적 체류 노동자들은 잘 뽑지 않아 
이들의 취업 상태는 항상 불안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취업을 해야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일자리가 없을 때는 아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노동 계약 기간이 끝났을 때 퇴직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적도 있어 새로 취업한 이 곳에서도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합니다.

현재 6,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정부에 난민신청을 하였고 이 중 350명 가량이 난민으로 인정 받아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난민이라고 불리는 우리 이웃들은 보이지 않지만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가족들인 것입니다.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고 싶어?”
“쎄스코 아저씨요.”
집안의 바퀴벌레를 전부다 없애는 쎄스코 직원이 참 멋져 보였다던 콩고 난민 아이의 꿈. 
태권도 동작을 보여주던 아이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 날의 이야기를 마음 속에 새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