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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칼럼] 법무부의 난민법 개정안, 피해자 양산이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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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21-01-12 00:00 조회9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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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과분하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마땅히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들의 기회를 변호사 자격증이 있다는 이유로 가로채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권리를 침해당한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공간은 제한적이다. 특히 난민신청자들의 목소리가 일반 대중에 닿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은 한국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출입국·외국인청의 ‘선처’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처지다. 부당한 대우에 불만을 표시하기도 어렵다. 외국인의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출입국관리법은 난민신청자들의 집단행동을 제약한다. 참다못해 나오는 이들의 호소는 극단적인 단식 농성을 할 때나 간간이 우리의 귀까지 미치고, 가뭄에 콩 나듯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법원의 판결문에 흔적을 남길 뿐이다.

 

지난해 10월 15일 공개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문(18진정0572400)을 읽다 보면 그동안 눌려 왔던 난민신청자들의 목소리들이 뾰족하게 튀어나온다. “제가 첫 번째 난민면접에서 ‘단지 일자리를 찾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으며 이집트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진술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치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제 난민면접조서가 가짜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절망감이 듭니다. 저는 한국을 믿었습니다. 한국 같은 문명국은 (본국인) 수단과 달리 정당한 대우를 해줄 줄 알았습니다.”

 

법무부가 설명하는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지난 2015~2017년 일부 아랍어권 난민신청자들의 난민면접 과정에서 진술하지 않은 내용이 면접조서로 작성됐고, 이에 근거해 난민지위가 인정되지 않았지만 극히 일부의 일탈로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다르다. 법무부는 당시 시행 중이던 ‘난민심사 적체 해소방안’에 따라 매달 할당된 목표 건수를 채우기 위해 다수의 난민신청자를 대상으로 ‘신속심사’를 시행했다. 특히 중동 아랍권 난민신청자 대다수가 신속심사 대상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난민신청자들이 난민 제도를 남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시행됐다. 법무부가 ‘제도 남용 금지’와 ‘신속심사’의 기치 아래 밀어붙인 적체 해소 정책은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법무부는 마치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대한 응답인 듯 두 달 뒤에 난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다시 ‘제도 남용 금지’와 ‘신속한 심사’를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재신청자는 중대한 사정변경에 대한 소명한 경우 외에는 심사 부적격결정 대상으로 분류돼 면접조사가 생략되고 이의신청도 제한된다. 오로지 체류 연장 목적이나 사인 간의 분쟁, 경제적인 이유 등 이 법에 따른 난민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한 경우에는 난민불인정결정을 내려, 이의신청 기간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을 단축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제도를 남용하는 자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심사하고 이의신청 기회를 제한해 최대한 빨리 송환하겠다’라는 목표로 만들어진 개정안인 셈이다.

 

난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난민심사제도가 어떻게 운용될지는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0.4% 수준의 난민인정률을 기록하고 있다. 재신청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 줌도 되지 않는 수의 시민단체 활동가나 변호사의 도움이 없다면 이의신청이나 소송단계에서도 난민 지위 불인정결정을 뒤집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금도 ‘사정변경이 없다’는 이유로 재신청이 거부되고 있는데,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관행을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로 기능을 할 것이다. 특히 개정안에서 난민불인정 사유로 들고 있는 체류 연장 목적, 사인간의 분쟁, 경제적인 이유 등에는 가정폭력이나 차별적인 취업 제한과 같은 난민 사유도 포함될 수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한국 내 난민신청자들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제도 남용의 표지로 사용될 위험성이다. 모든 난민은 가능한 한도 내에서 한국 내 합법적인 체류를 연장하고 싶어하고, 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취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난민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법무부가 희망하는 ‘신속한 심사’도 현실적으로는 달성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어차피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신청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불인정결정을 적극적으로 법원에서 다툴 수밖에 없다. 결국 신속한 심사는 무엇보다 공정한 심사가 전제돼야 하며, 심사역량의 대폭의 강화로 이뤄져야 한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국가’라는 점을 국제적으로 널리 홍보해 왔다. 이번 난민법 개정안은 그동안의 기록적으로 저조한 난민인정률과 맞물려 국제사회에 한국이 난민협약 당사국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충분히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의문을 던지게 할 것이다. 박해에 대한 공포를 호소하는 난민의 목소리가 온전히 담길 수 있는 난민심사가 이루어지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난민법 개정을 희망한다.

 

이탁건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이 글은 조선일보 더나은 미래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