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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칼럼] 불편해도 괜찮아 -김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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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2-05-02 00:00 조회2,7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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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생활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영화를 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영화는 일단 재미있고, 때로는 영화를 본 뒤 알 수 없는 힘이나, 따뜻한 감정, 교훈 등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에 몰입해서 일상 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겪어보는 것도 큰 재미입니다.

하지만 무심코 들어선 극장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필립모리스>라는 영화가 그러했습니다. 
짐 캐리와 이완 맥그리거라는 멋진 두 배우가 함께 출연한 코믹 영화 정도로만 알고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짐 캐리가 다른 남성과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등장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저보다 더 깜짝 놀란 친구에게 겉으로는 “개인 취향인데 뭐 어때”라며 쿨한(?) 척을 하였지만, 
아무래도 속에서는 뜨끔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영화의 줄거리도 가물가물하지만 그 장면과 그때의 불편했던 느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여러분은 이런 경험이 없으신가요? 


제가 <불편해도 괜찮아> 라는 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동천의 북 스터디 ‘창문’을 통해서입니다. 
격주로 점심에 시간을 정해놓고 각자 읽어온 책에 대해 간단히 코멘트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다른 인턴 분이 이 책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라는 소개를 듣자 바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고, 어렵지 않게 책을 집어들 수 있었습니다.

헌법의 풍경으로 유명한 김두식 교수님이 쓴 <불편해도 괜찮아>는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라는 부제답게 
여러 영화를 통해 청소년 인권부터 성소수자, 여성과 폭력, 장애인, 노동자, 종교문제, 표현의 자유, 인종차별 등 
다양한 분야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저처럼 영화를 보다가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왜 찾아오는지, 
그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해 나름 명쾌한 해석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데, 
  왜 동성애자들이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편하게 수용할 수 없는 걸까요? 
  게이들끼리 육체적 사랑을 나누는 영화 속 장면을 보면 늘 ‘느닷없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중략)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다름’에서 온 것입니다. (중략) 
   다름에 따른 불편함 자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다름 또는 불편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있습니다.
(59쪽)


저는 이 부분을 읽고 제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사실 좀 부끄러웠습니다. 
평소에 성소수자 관련 이슈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이성애나 동성애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지, 본인 이외의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 할 일이 아니다. 동성애 역시 존중 받아야 한다.”고 말해왔고, 
스스로도 동성애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별다른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자의 섹슈얼리티가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마주할 때면 저 역시도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보니, 
겉과는 달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다름’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다행인 것은 솔직해지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중요한 문제는 결국 다름 또는 그로 인한 불편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름 또는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하되 적어도 그것을 차별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다름’에서 비롯되는 불편함 이외에도, 
이 책은 영화를 보면서 별 생각 없이 넘어갔던 장면들 속에 숨어있는 ‘불편한’ 사실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합니다. 

  

영화 <300>이나 <오아시스>속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라든가 
<빌리 엘리어트>를 통한 노동자 문제, 외국 영화의 번역이 만들어 내는 부적절한 상하관계나 영화의 등급 속에 숨겨져 있는 권력 관계 등, 
관객들이 특별히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는 장면들에 나타난 편견이나 인권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막연히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장면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고, 과연 그것이 당연한 이유가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편견이나 차별이 숨겨져 있는 장면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곧 인권감수성의 출발점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불편함을 느껴 볼 것을 제안합니다. 
 

“영화나 소설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바꾸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바꾸느냐에 있습니다. (중략) 
  그런 선택을 보고 불편을 느끼는 것이 인권감수성의 출발점입니다. 
  영화를 볼 때마다 자신을 누구와 동일시할 것인지 조심스럽게 선택해 보십시오.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141쪽)


이 책을 읽으면서 저 역시 별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고 지나갔던 장면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자의 모든 생각에 공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새롭게 제시해주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합리한 차별이나 편견에 대해서는 그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라 하더라도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갖고자 스스로를 다짐해보았습니다.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 문제의식을 갖고 노력하다 보면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기본으로 하는 <불편해도 괜찮아>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를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중요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꼭 인권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책을 통해 내가 본 영화들 속의 여러 장면에 대해 저자와 이야기 해보는 것은 유쾌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 총량의 법칙’이나 영화에 관한 뒷이야기 등 저자가 전해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들이 중요한 이야기들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겁지 않게 쓰고 있기 때문에 출퇴근 길에 가볍게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책을 찾으신다면 이 책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불편해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