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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위기의 시민사회, 시민과 함께 재도약 할 때_이희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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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23-10-24 11:34 조회35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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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민사회, 시민과 함께 재도약 할 때

재단법인 동천 이희숙  변호사

(이 글은 2023. 10. 23. 소셜임팩트뉴스에 게재된 글입니다)

 

 매년 진행되는 기관신뢰도 조사에서 시민단체는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신뢰도 긍정 비율을 보면, 시민단체는 48.8%, 대기업 57.6%, 중앙정부 50%의 신뢰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벌의 특권, 정부의 무능이 수시로 도마에 오르는상황에서 이들보다 더 못 믿겠다는 시민단체는 정확히 어떤 조직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시민사회는 전통적으로 독재정치에 맞서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성격이 강했고, 오늘날에도 이러한 관점에서 시민단체를 정치적 성향을 지닌 특정 집단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이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들의 결사체이고 마을 활성화, 건강, 문화, 교육, 복지 증진 등이 모두 시민사회의 영역이다. 실제로 시민단체 불법이익 환수 공약에서 시작된 정부의 보조금 감사 결과를 보더라도 각종 협회, 협동조합, 국제구호단체, 사회복지단체 등 다양한 민간 연합체가 그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는 정부, 기업과 함께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그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과거 마을 단위 공동체가 해체되고, 코로나19, 온라인 기술 발전 등으로 파편화와 분절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관심사로 모이고 활동하는 연대체는 활동의 성과를 넘어 존재 자체로 한국 사회의 가능성이고 희망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를 좁게 보는 인식, 스스로의 실책, 침소봉대 시각의 정치권, 언론 등과 맞물려 시민단체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정치인들은 시민단체를 선거의 발판으로 삼기도 하지만, 당선이 되고 나면 크게 관심이 없었다. 더욱이 이번 정부는 무관심을 넘어 고강도 조사와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월에 대통령실은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감사 결과 1,865, 314억 원의 부정수급을 적발했다며, 부정·비리를 엄단하고 내년도 보조금을 5,000억 원 이상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영리법인은 제외한 주로 비영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고, 조사 결과 비영리에 부정 수급이 있으니, 비영리에 대한 보조금을 감축하겠다는 취지이다. 위 국고보조금 감사에 이어 행정안전부는 비영리민간단체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의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감사에는 전 부처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지고, 협회, 협동조합 등 다양한 조직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부정수급 비율이 0.5%에 이르렀다면, 좁은 의미의 시민단체와 가까운 비영리민간단체에 대한 행정안전부의 감사에서는 부정수급 비율이 0.007% 비율로 집계된 것은 눈여겨볼만한다.

 부정수급한 단체에 대하여는 고의성에 따라 엄벌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실하게 필요한 사업을 수행해온 단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문제다. 실제 집행 비율이 더 높은 산업계 영리법인에 대하여는 조사도, 보조금 축소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반면, 예술단체에 보조금 30% 삭감, 출판계에 대규모 보조금 삭감, 전국 외국인 노동자지원센터, 사회서비스원 예산 전액 삭감, 사회적기업 인건비 보조금 삭감 등 예술, 문화, 출판, 사회서비스 전 분야는 보조금 절벽이 예상된다.

 

 기부금 외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으로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던 단체로서는 조직과 사업의 축소가 불가피하다. 어떻게든 이 어려운 시기를 버텨내려면 기본으로 돌아가 시민들의 참여 확대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회원을 기부자나 서비스 수혜자 정도로 인식하지 않고 스스로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역할과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법인의 작은 문제에도 회원의 의견을 묻고, 회원이 각종 사업에서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참여 기회를 넓혀야 한다. 이사회도 명성 있는 바쁜 분들이 연 1~2회 모이는 것으로 형해화되지 않도록 단체의 활동에 책임을 지는 이사들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회원들이 관심사와 특성에 맞는 소그룹을 조직하고, 소그룹 별로 사람을 더 모아 단체를 확대해 나가는 전략도 필요하다. 또 시민들, 회원들이 지갑을 열고 기부에 참여하게 하려면, 기부금이 어떤 방식으로 쓰이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충분히 소통하고 증명해야 한다. 체질 개선을 통해 활동과 기부로 참여하는 시민들을 확대시키지 못한다면, 오랜 역사가 있더라도 단체의 내일을 보장하지 못한다. 일반 기업도 5년을 버티는 기업은 3곳 중에 1 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혁신적인 단체도 제도의 벽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회원의 참여를 높이기 위하여는 회원들의 의사에 따른 자유로운 설립, 운영이 가능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법인 설립도 정관 변경도 주무관청의 허가 사항이다. 회원들이 오랜 시간 논의 끝에 새로운 사업을 확장하기로 하고, 정관 변경 결의를 해도 주무관청이 소관 사업이 아니라며 불허하면 끝이다.

 모금의 경우에도 한계가 명확하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1,000만원 이상의 모금을 하는 경우 모집 등록을 해야하지만, 등록할 수 있는 목적 사업이 제한적이다. 등록을 하더라도 모집비용으로 15%만 쓸 수 있는데, 실무에서는 인건비, 운영비 등이 모두 모집비용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어 현장과 맞지 않다. 사람이 하는 공익사업에서 인건비 사용이 제한되니 법에서 정한 기준을 맞출 수 있는 곳이 극히 드물다. 모집한 기부금품의 사용기한도 실무상 2년으로 제한되어 장기 프로젝트나 사업에 필수적인 건물이나 자동차 등 매입을 위한 모금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규제가 있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모금을 하다가 기부금품법 위반이 문제된 단체들도 다수 있다. 단체들은 공익법인으로서 세법에서 정한 사항을 모두 준수해왔는데 기부금품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당황스러워한다.

 또 현행 기부금 제도는 시민들의 다양한 기부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전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는 기업가가 나오지만, 허용되는 주식 기부는 현저히 제한적이다. 1인 가구, 노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유산기부가 강조되고 있지만, 필요성과 관심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부로 이어지는 사례는 적다. 본인의 주택을 생전에 기부한다면, 사는 동안 사용하지 못하고 곧 바로 집을 내주어야 한다. 본인이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집을 내주는 기부자가 있더라도 기쁜 마음으로 받았다가는 상속자들로부터 유류분 반환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회원 참여와 관련하여 의사록 인증제도도 큰 장벽이다. 값비싼 비용을 드리고 공증인을 총회에 모시지 않는 한, 임원이 변경될 때마다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로부터 인감도장 날인과 인감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사단법인에 회원이 되면 인감증명서를 정기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낸다면, 회원으로 가입할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인감증명서 수령에 수개월이 걸리고 이 마저 모으지 못하면 등기 해태 과태료가 부과되는 현장의 어려움은 의결권이 있는 회원을 자연스레 축소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시민단체 내부에서는 오랫동안 논의되어 와서 다시 언급하는 것이 지겨울 정도이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생소한 이야기이다. 단체의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제도의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면 문제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제도도, 지지도, 재정도 열악한 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직접 주체자가 되어 어려운 제도적 환경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 60년째 정체되어 있는 시민사회 법제 환경도 바뀔 수 있을까, 본인이 직접 시민단체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면, 기관신뢰도 조사에서 좀 더 긍정적 평가를 하지 않을까. 이 변화를 만들어 낼 활동가들, 시민들을 응원하며 기대해본다.

 

 

원문보기>  https://www.socialimpact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13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