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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제정 10주년을 맞은 난민법의 개정 방향_권영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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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22-06-20 16:43 조회7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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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10주년을 맞은 난민법의 개정 방향

재단법인 동천 권영실  변호사

(이 글은 2022. 6. 20. 더나은미래에 게재된 글입니다)

  

이번 6월 20일은 2012년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후 10번째 맞이하는 세계 난민의 날이다. 또한 올해는 한국이 난민협약에 가입하여 난민보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의지를 국제적으로 밝힌 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는 난민이라는 새로운 사회구성원이 한국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한 지 30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난민은 한국사회에서 가리워진 존재이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주변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작년 말 난민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난민인정자와 인도적 체류자의 신속한 사회적응과 안정적인 국내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취업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들에게 취업활동을 허가만 하였을 뿐, 언어와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도록 적극적으로 돕는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난민법은 난민에게 대한민국 국민과 같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있고, 국제사회는 인도적 체류자에게도 난민에 준하는 처우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법과 실무의 괴리 및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인 개별 법령으로 인해 이들이 마주하는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난민도 공공주택에 입주할 자격이 있다고 판시한 법원의 판결(서울행정법원 2021. 11. 23. 선고 2020구합78100)에도 불구하고 국토교통부는 여전히 이를 허용하고 있지 않으며, 인도적 체류자는 취업할 수 있는 분야가 실질적으로 단순노무직에 한정되어 있고, 귀화가 불가능하며, 소득·재산과 무관하게 매달 부과되는 높은 건강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와 같이 취업지원 외에 난민과 인도적 체류자의 처우에 있어 개선할 부분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난민법 개정안의 초점은 난민인정 재신청자에 대한 적격심사 제도 도입에 있다.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받은 사람 등이 다시 난민인정 신청을 하고자 하면 적격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중대한 사정 변경을 입증하지 못하면 난민인정 심사를 받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에 속하는 평균 1%라는 한국의 난민인정률에 적격심사라는 장벽을 하나 더 얹은 꼴이 된다.


이러한 적격심사 도입의 정당성은 법무부의 난민불인정결정이 타당하다는 전제 하에서만 확보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난민인정제도가 전반적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심각하게 낮은 난민인정률과 난민심사 과정에서 절차적 권리가 미흡한 점, 이로 인해 법률조력을 받지 못한 난민신청자의 경우 난민인정을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는 점 등은 불인정결정을 받았음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시 난민인정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또한 2015년부터 법무부는 아랍어권 국가 출신 난민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신속심사를 진행하도록 지시하였고, 이는 수많은 신청자의 진술과 다른 허위의 내용이 면접조서에 기재되고 구체적인 심사 없이 불인정결정을 받은 소위 ‘허위난민면접 조작사건’으로 이어졌다. 이와 같이 난민이 재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법무부의 실패한 난민심사제도가 초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수긍할만한 난민심사결과를 보장하지 않은 채 재신청만 제한하는 방안은 적체된 난민심사 대기자 수를 줄이기 위한 눈가림식 대안일 뿐이다. 오히려 제도의 실패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정부가 남용적 난민신청자로 낙인찍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난민법의 개선방향과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난민이 처한 현실과 의미를 되짚어 보는 국제학술대회가 2022. 6. 9. ‘파편사회에서의 난민보호와 시티즌십’이라는 제목으로 개최되었다(주최: 재단법인 동천, 유엔난민기구, 전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난민법을 둘러싼 현안 중 난민재신청 제한정책 외에도 난민인정자에 대한 강제퇴거, 인도적 체류자격 개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난민의 시민사회 참여 및 지역사회 정착에 대한 해외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앞으로 한국사회의 과제를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다. 

 

국제정세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평화롭던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나 죽음에 대한 공포 속에 국경을 넘어 세계 각지로 피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따라 당연히 한국으로 발길을 향한 난민들의 수도 늘고 있다. 난민법 제정 이후 10번째 맞이하는 세계 난민의 날, 한국사회에서 난민이 배타적인 테두리 밖에 더 이상 서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날카롭게 날이 선 채 신속성만 강조하는 난민심사제도가 아닌 보다 투명하고 신뢰할만한 제도를 구비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미 우리사회의 새로운 이웃이 된 난민과 인도적 체류자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사회구성원으로 참여하며 앞으로의 삶을 평화롭게 그려 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권리보장과 지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