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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등록 아동과 국가의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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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21-09-24 17:33 조회1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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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아동과 국가의 책무

 

황인형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은 필수적인 의료 및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되어 삶의 여러 위기에 대처할 수 없게 됨은 물론, 폭력과 학대,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으며, 부모를 알 권리, 가족결합의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한다.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주민번호로 본인인증을 받고, 백신을 맞고, 각종 정부 지원금을 받는 당연한 일상의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 년 전 결성된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2017. 7.경부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아동인권위원회와 함께 미신고 아동들의 출생신고를 위한 법률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의 여러 아동양육보호시설들로부터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례가 법률지원단에 속속 접수되어,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아동들이 많음을 실감하게 한다.

 

신고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도 일상적으로 접하여서, 아동의 출생신고를 한다는 것이 법률지원단이 필요할 만큼 어려운 일인가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행법의 규정 상 아동의 부모가 아동의 출생을 외면하고 있다면, 그 아동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지역사회와 국가가 발 벗고 나서야만 한다.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라 동거친족이나 분만에 관여한 의사 등이 2차적인 신고의무를 지지만, 아동이 병원 밖에서 태어나거나 아무런 설명 없이 유기되어 신고의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사례들도 많다. 이런 때 만약 국가마저 복지부동이라면 사실상 아동의 출생사실을 신고할 방법을 찾기 어렵게 된다.

 

최근의 사례를 예로 들면 이렇다. 김지연(가명, 4)은 지역의 한 병원에서 출생한 후 치매증세가 있어 양육 능력이 없는 외조모에게 맡겨졌고, 생모는 잠적했다.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김지연을 아동양육시설로 입소시킨 후 생모를 고발하였다. 생모는 이내 아동학대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김지연은 다시 잊혀졌다. 다른 출생신고 의무자를 찾을 수 없었던 아동양육시설은 관할 지자체에 출생신고를 의뢰하였지만, 지자체는 생모의 법률상 배우자가 지연이의 생부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해당 배우자의 자녀로 출생신고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어 민원이 우려된다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률지원단이 사건을 의뢰받고 다시 지자체의 설득에 나섰지만, 민원을 우려하는 담당자의 입장은 완고했다.

 

이 사건은 한동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법률지원단을 통해 지연이의 사정을 듣게 된 검찰이 출생신고 지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생모가 처벌받았던 아동학대 사건 수사기록에는 김지연의 출생신고를 위해 필요한 사실관계와 이를 뒷받침할 각종 서류가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법률지원단이나 기타 기관에서는 이를 열람할 방법이 없어 어려움을 겪던 중에, 검사와 수사관이 기존 수사기록에서 출생신고에 필요한 증빙자료를 확보했다. 법률지원단은 현재도 김지연의 출생신고를 지원하고 있고, 앞으로도 출생신고와 가족관계등록부를 실체에 맞게 정정하는 데 필요한 여러 절차가 남아있지만, 검사가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선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특히 생모, 생부에 의한 출생신고가 어려운 사건에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자처하느냐에 따라 아동의 삶이 중대한 기로에 선다.

 

하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들이 매년 수십 명씩 시설에 입소하고 있고, 국가가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수는 최대 2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일부 검사나 공무원의 열의에만 기대어서는 수많은 아동들의 미등록 상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행정관청의 소극적 태도를 담당공무원 개인의 도덕성이나 게으름의 문제로 치부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일선의 담당자가 적법한 출생신고 권한을 행사함에도 민원을 이유로 인사조치 등 불이익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 온 것은 아닌지 점검하고, 적법한 공무수행을 방해하는 악성민원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처가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여러 지자체들이 직권신고 사례를 축적해나가고, 모범사례 홍보와 담당공무원의 포상 등 장려정책을 수반하여야 한다. 보편적 출생신고 제도의 도입을 통해 앞으로 한국에서 태어날 아동들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함에 더하여, 이미 출생신고의 기회를 놓친 아동들을 적극 찾아내고 출생신고를 마쳐 인권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의무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가 향후 국가의 출생신고 지원정책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