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지표 정책세미나 > 공익법률지원활동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활동

공익법률지원활동

동천은 법무법인(유한) 태평양과 협력하여 난민, 이주외국인, 사회적경제, 장애인, 북한/탈북민, 여성/청소년, 복지 등 7개 영역에서 사회적 약자가 인권침해 및 차별을 받는 경우와 공익인권 단체의 운영에 있어 법률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 공익소송 및 자문을 포함한 법률지원, 정책·법 제도 개선 및 연구, 입법지원 활동 등 체계적인 공익법률지원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주외국인 | [현장스케치]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지표 정책세미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재단법인 동천 작성일15-10-26 00:00 조회2,535회

본문


제가 사는 동네의 혜화동 로터리에 일요일 마다 리틀 마닐라(Little Manila)라고 불리는 필리핀 주말 장터가 열립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러운 광경이겠지만 저에게 장터의 모습과 익숙한 음식 냄새들은 친근감을 가져다 줍니다. 장터를 지나칠 때 마다 한국에서 이 많은 필리핀 사람들은 어디에 살고 어떻게 생활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가 궁금했었습니다.

최근에 일부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연 평균 2,000명 이상의 필리핀 사람들이 2004년부터 2013년까지 예술흥행 비자로 입국했고 이들은 전체 예술흥행 비자 입국자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 예술흥행 비자의 일종인 E-6-2 비자로 입국하는 필리핀 여성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가수의 꿈을 펼치기 위해 입국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린 한국의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필리핀 여성들은 클럽 등의 유흥업소로 넘겨져 업주에게 여권도 빼앗기고 성매매를 강요 당했습니다. 제보로 인하여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필리핀 여성들을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했다는 사실에 화가 불편했고 화가 났습니다. 어째서 이 여성들은 인신매매 피해자로서 보호받지 않고 피의자 신분이 되었을까요?
 

지난 8월 31일, 이자스민 국회의원과 국제이주기구 한국대표부 주관으로 열린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지표 개발과 법제화를 위한 정책세미나’에 다녀왔습니다. 전문가들과 관련 정부 부처의 사람들이 모여 현대판 노예제도인 인신매매를 방지하고 피해자의 인권보장, 보호 및 자립 방안을 토론하고자 개최된 세미나였습니다.   

      인신매매 세미나2.jpg     인신매매 세미나1.jpg

 세미나에서 염전노예사건으로 대표되는 노동착취 목적의 인신매매와 필리핀 이주 여성사건으로 대표되는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가 주로 다루어졌습니다. 국제이주기구 박미형 소장이 주제발표를 시작하며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지표의 필요성을 알렸습니다. 적절하고 빠른 피해자 식별이 진행되지 못한다면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학대, 착취, 권리 침해는 물론이고 보호 서비스에 접근을 못하거나 법률 위반으로 강제퇴거 또는 징역형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기에 식별지표 개발은 중요해 보였습니다. 사실 염전노예 사건은 이런 식별지표의 부재로 인해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김강원 팀장은 염전노예사건 사례들을 통해 해결과정에서의 일어난 문제점과 많은 피해자들이 다시 염전으로 돌아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김종철 변호사는 포괄적인 인신매매 정의 규정과 인신매매 식별 메커니즘의 부재로 인해 인신매매 예방, 처벌, 피해자 보호 및 협력 측면의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기에 인신매매 피해자 식별 지표 개발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두레방 쉼터의 조은수 상담원은 E-6-2 예술 흥행비자로 입국한 필리핀 여성 4명이 업주한테 성을 착취 당하고서도 오히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당한 이야기를 소개하며 수사과정에서의 문제점과 개선 필요성을 알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가 성착취 인신매매를 위해 사용되는 E-6-2 예술 흥행비자의 현황을 알리면서 예술 흥행비자 제도의 개선과 피해자 보호 및 가해자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주제발표가 끝나고 여성가족부, 법무부, 고용노동부와 경찰청 관계자들의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부 부처 관계자들의 토론이 생산적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적된 내용들에 공감한다. 각 부처에서 해결하고 있다. 다만 한계가 있으니 기대에 못 미쳐도 이해해달라”는 답변들이 많았습니다. 여러 부처들이 바쁘고 다른 일도 많아 진행이 늦을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어 이해를 해달라는 말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노동 및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 피해자들은 인간으로서 최소한 누려야 할 권리들을 모두 억압당하면서 살고 있는데 정부 관계자들의 한계가 있으니까 이해를 해달라 라는 말에 공감 할 수 없었습니다. 다양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말을 듣지 못해 아쉬운 세미나였습니다. 

 E-6-2 비자에 대해서 알게 된 후에 찾아간 일요일의 마닐라 시장에서 저는 괜히 주눅들었고 미안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노동 및 성착취 목적의 인신매매를 용인해서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강력한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구제 법안의 통과와 피해자 식별 지표의 개발로 인신매매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이 필리핀 여성들뿐만 아니라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


동천 12기 남평 인턴